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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가 아니라 사영화가 맞다. 헌법정신과 민영화

臥薪嘗膽 2013. 1. 25. 13:39

민영화가 아니라 사영화가 맞다
오늘 네 번째 강의 주제는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90년대 이후 역대 정권의 집권 초기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가 ‘민영화’ 얘기다. 우선 먼저 용어부터 바로 잡고 시작하자. ‘공(公)’의 반대말은 ‘민(民)’이 아니라 ‘사(私)’이다. 그러니 정확하게는 ‘사영화’라고 쓰는 것이 맞는데, 언제부터인가 민영화라고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촛불 집회 당시 민영화 시도가 막히자,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도대체 ‘선진’의 잣대는 뭔가?

우파들이 만든 제헌 헌법 속 급진적 공공 정신
공기업 민영화는 국가의 공공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공적 기업을 민간 대자본에 팔아 큰 이윤 획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친재벌 정책’의 결정판이다. 이명박 정부는 왜 그리 민영화에 집착하는 것일까? 본래 우리나라는 재화의 공공성에 대한 개념이 강한 나라다. 『주례』에 입각한 유교 국가 조선이 그러했고, 현 헌법과 뿌리가 맞닿아 있는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조소앙)이나 제헌헌법(유진오)을 살펴보면 지금의 시각으로는 엄청나게 급진적인 토지개혁과 재화, 기반 시설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

제헌 헌법 제86조 :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
제헌 헌법 제87조 :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이 제헌 헌법을 만든 이들은 우파들이었다. 이 헌법에 따라 1950년 농지개혁을 실시하였는데, 당대 최대 지주였던 김성수조차 이 농지개혁을 반대하지 않았을 정도로 토지나 중요 산업 시설을 공영화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왜 한국에는 공기업이 많았나?
국가별로 공기업의 비중은 저마다 다르다. 영국의 경우 2차 대전 후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전시통제하의 기업들을 대거 국유화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경우도 나치 협력 집단의 재산을 국가가 몰수해 국유화했다. 미국은 자영업자 중심으로 경제가 발전했기 때문에 공기업의 비중이 유럽과 비교해 상당히 낮다.

한국에 공기업이 많은 편인데 역시 그 뿌리는 해방 후 적산(귀속재산)의 처리 문제와 관련이 있다. 또한 일본과 거리가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식민지 공업화가 대규모로 이루어졌고, 다른 나라에 비해 적산의 규모가 컸다.

공기업 민영화가 가장 활발했던 시절은 DJ 정권 초기이다. 국가 부도 국면에서 많은 공기업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 포항제철, 한국통신, 한국담배인삼공사, 한국중공업 등 8개 공기업이 완전 민영화되고, 한국전력,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이 부분적으로 민영화되었다. 공기업의 67개 자회사도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공기업의 비효율성’을 공기업 민영화의 명분으로 삼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한다.

진짜 효율성 때문에 민영화를 주장하나?
외환 위기 이후 정부와 언론의 민영화 당위론 속에서 “공기업은 비효율적이고, 따라서 민영화해야 한다”고 수동적으로 민영화를 지지해오던 국민들의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공공요금과 민생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쇠고기 문제와 대운하, 공공 분야의 민영화 문제가 맞물려 있는 것임을 파악한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 안하겠다고 꼬리를 내렸지만, 공기업의 무사안일과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언론플레이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선진화’라는 레토릭으로 우회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정말 공기업의 경영 방식이 비효율적이어서 민영화를 시도하는 것일까? 민영화 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개혁하는 방식은 없는 것일까? 과연 민영화 하면 효율성이 증대될까? 시장 자체가 완전 경쟁 체제라면 경쟁이 효율성을 가져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영화가 거론되는 많은 기업들이 시장 내에서 독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공기업의 목표는 ‘국가 기간 시설의 안정적 관리’이다. 민영화되는 순간 그 목표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로 바뀐다. 결국 누가 손해를 보는가? 고스란히 국민이 그 짐을 떠맡게 된다.

다음 주 강의 주제는 ‘괴담의 사회사’이다. 한국 사회에는 왜 이렇게 괴담이 많은가? 그 괴담은 어떻게 전파되고, 어떻게 소비되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자.

정리 박상준 <한겨레출판> 편집부 인문팀장 laughter@hanibook.co.kr
영상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